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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8년 만에 꺼낸 김명제의 속마음

  • 1051 | 2018.01.09

 

 

 

 

"죄송한 마음이 크죠."

 

야구공을 내려놓은 지 8년이 흘렀다.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생활한 지는 3년째다. 2009년 음주 운전 사고 이후 많은 게 변했다. 

일상이 달라졌다. 하나둘씩 새로운 것들로 삶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야구와 두산 베어스는 쉽게 비워지지 않았다. 

김명제(30)는 조심스럽게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김명제는 2005년 1차 지명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이 얼마나 기대한 선수였는지는 계약금 6억 원이 증명한다. 

두산 관계자는 "당시 구단에서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1차 지명 선수들이 2억 원, 1억5천만 원 받는 시절이었다"고 설명했다.

 

구단의 기대를 가장 잘 아는 건 선수 본인이었다. 김명제는 데뷔 첫해 포스트시즌 경기에 선발 등판한 것도 모자라 승리 투수가 됐다. 

한화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5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당시 나이 18세 9개월 5일이었다. 

역대 최연소 포스트시즌 승리 투수.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강렬한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9년 전지훈련 때는 조기 귀국 통보를 받으면서 입대를 고민했다. 

김명제는 2009년 시즌 16경기 1승 2패 32⅓이닝 36실점(33자책점)을 기록했다. 김명제는 "말이 안 되는 성적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 성적이 프로 마지막 해 기록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김명제는 마무리 캠프부터 조계현 코치(현 KIA 타이거즈 코치)와 부지런히 2010년 시즌을 준비했다. 

조 코치는 김명제에게 심리 상담사까지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리고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김명제는 "다들 내 공이 좋다고 해도 내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는 하나가 잡히니까 다 잡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원래 공을 던지면 고개가 엄청 흔들렸는데, 그때는 그게 안 좋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고등학교 때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연봉 협상 때도 얼마가 깎여도 상관없으니 내년에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은 음주운전 사고와 함께 사라졌다. 

김명제는 "내가 잘못해서 내 죗값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공을 던져보고 야구를 그만뒀으면 아쉬운 마음이 없었을 거 같다. 그때 그 밸런스로 1년만 성적이 좋든 안 좋든 던져보고 싶었다. 지금도 그게 가장 아쉽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쉬운 마음만큼 큰 기대를 보여줬던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김명제는 "구단에서 기대가 컸고, 투자도 했다. 김태룡 단장님께서 지금도 아쉬운 선수로 저를 꼽아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다.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다는 팬들의 반응도 봤다. 다시 야구는 할 수 없으니까. 팬분들, 부모님, 친구들에게 지금 테니스를 잘하고 있고, 극복하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사고 이후 잠실야구장은 가지 않았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겹쳤다. 옛 동료들을 만날 때 구장 근처까진 가봤지만, 구장 안에 발을 들이진 못했다. 

야구장 자체를 멀리한 건 아니다. SK 와이번스에서 뛰고 있는 친구 최정과 정의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종종 SK행복드림구장을 찾았다. 

 

3년 정도 방황한 김명제는 테니스를 시작했다.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선수로 생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야구와 비슷한 점에 매력을 느꼈다. 

김명제는 "서브를 넣는 건 투수랑 비슷하다. 포핸드를 칠 때는 타자, 쫓아가서 바운드를 측정할 때는 야수들이 수비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테니스와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성과가 나타났다. 김명제는 "처음에는 목까지 숨차고 땀을 흘리는 게 좋았다. 

무언가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좋았다. 선수로 뛰면서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올해 전국체전에서는 복식 금메달, 단식 은메달을 땄다. 11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투어 대회에서는 운 좋게 복식에서 준우승했다"고 이야기했다. 

 

성과가 나면서 목표도 생겼다. 패럴림픽 또는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걸면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하는 꿈을 꾸고 있다. 

김명제는 "잠실은 무언가를 이루기 전에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시 나를 기억해 주시는 두산 팬분들이 있다면, 메달을 따고 난 뒤에는 시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열심히 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잠실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밝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금 더 독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김명제는 "운동을 더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훈련을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있다. 최근 후원을 문의하는 분들도 생겼다. 2018년에는 정말 미쳐서 운동해 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